서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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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산
Seohansan.png
시민국의 국기 시민국제25대 대통령
임기 2015년 5월 27일 - 2015년 11월 26일
전임: 라사 합스부르크(제22·23·24대)
후임: 라사 합스부르크(제26대)

시민국의 국기 시민국 제20대 부통령
임기 2012년 12월 24일~2013년 5월 11일
전임: 도미니크 시슬리(제19대)
후임: 라사 합스부르크(제21대)

시민국의 국기 시민국 제24대 부통령
임기 2014년 11월 27일~2015년 5월 8일
전임: 버트 합스부르크(제23대)
후임: 라사 합스부르크(제25대)

국적 시민국의 국기 시민국
출생일 2007년 5월 13일
출생지 뉴자유빌[1]
거주지 시민국의 국기 시민국 높마루 주
별명 아즈마, 아줌마, 두목, 서생원, 서하사, 다나까[2]
배우자 HARE
웹사이트 http://blog.naver.com/qw3111

서한산(Seo Hansan, Azuma Hansan, 2007년 5월 13일 ~ )은 시민국의 정치인, 기업가, 언론인이다.

초기에 박정대와 공동으로 wjdeo가를 운영한 경험도 존재했으며, 각종 공무원 보직에 있으면서 독선과 아집등으로 인하여 인지도가 떨어지기도 하는 등의 일도 있었으며, 2008년 2월에는 하레와 결혼하여 다다월즈 역사상에서 몇 안되는 이성과 결혼한 사람이기도 하였으며, 2009년에는 시민국 정모를 진행하기도 하고, 2010년부터는 외사부에서 시민국 통장을 관리하고 있는 등 시민국의 짧은 역사기간동안 많이 언급된 인물중 하나로 평가되는 편이다.

현실의 삶

1990년대에 태어난 평범한 인물로써 시민국 내 이름인 서한산의 서는 실제 본명의 서(徐)을 의미한다. 사샤 시슬리의 본명과는 같은 가문이나, 공파가 달라 서로 먼친척으로 취급되고 있다. 전형적인 핵가족화에 맞게 태어나 남들 만치 컴터도 만져보고 인터넷도 만져보았지만 정작 다다월즈를 접속한 것은 상당히 늦은 편인 고등학교 2학년(2007년)에나 접하게 되었다. 버스와 화물차등의 상용차에 대해 관심이 많았으나, 2003년부터 자리잡힌 철도 기관사라는 꿈은 그의 인생을 바꾸는데에 크게 작용하여 오늘날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틈틈히 철도 사진을 촬영하고 노선을 타보고 이것저것 철도에 대해서라면 무엇이든지 신기해하고 있다. 2011년 여름부터 내일로를 끊어서 여행을 가는 등 철도에 대해선 아직도 현재진행형. 그러나 찍는 사진량에 비해 블로그 등 다른 매체에 업로드 되는 양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이는 자기만족차원에서 사진 촬영하는데에 크게 의미를 둔다는 것이 본인의 생각이다.

학창시절, 유일한 장래희망이었던 철도 기관사라는 꿈 하나 덕분에 일부러 고등학교를 실업계 고등학교로 지원하고 관련 기능사를 취득하는 등 메사에 열정적이었으나, 수시 및 정시마저도 지원한 대학에 다 떨어져 큰 좌절을 겪었다. 그렇게 허무하게 고등학교 졸업식을 치룬뒤에 부사관에 관심을 가져 지원하여 단 한번에 합격, 2009년 12월에 하사로 임관하여 계속 복무중에 있으며, 2013년 12월 1일부터는 중사로 진급하였다. 과거에는 계속 하루하루 전역일에 연연해왔으나, 현재는 생각이 바뀌어 장기복무 심의 결과 2014년 6월에 장기복무가 결정됨으로써 약 20년 동안의 군생활이 열리게되었다. 2014년 기준으로 약 "15년"의 군생활이 남아 15년 뒤에 무엇을 할지 고민중이다.

개인적으로 을 지나치게 중시하는데, 이러한 한의 궁극적인 결정체는 바로 자기 스스로 결정을 내린 "내 인생의 세가지 물건"이 있다. 이는 디지털 카메라, 태블릿, 키보드(신디사이저)를 지칭하는 용어로 이미 디지털카메라와 태블릿에 대해선 해결이 완료. 2012년 현재는 키보드에 대해 관심갖고 준비를 하고 있다.

그의 이름에 대해서

오로지 영어와 숫자로만 허용되는 다다월즈의 시스템상 Seo Hansan이라는 영문명을 영어로 사용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영어에 대한 경멸이 지나치다못한 상황이라 서한산이라는 한글명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서한산이라는 이름이 하루아침에 지어진 것이 아닌데, 초창기에는 네이버에서 사용하는 아이디인 qw3111을 사용하다가 이후 박정대와 같이 wjdeo가를 차리면서 이후 가문명 앞에 이름을 Seo로 쓰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후 wjdeo가가 사라지고 최후로 남은 한산가는 본인의 손으로 가문을 해산한 이후로도 서한산이라는 명칭은 사라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와는 반면에 다다월즈를 제외한 채팅상에서는 유난히 아즈마라는 이름을 많이 사용하였는데, 이는 2005년부터 서한산이 직접 일본어를 배우면서부터 자기 이름을 일어로 작명을 하는 것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가지면서였다. 동(東)의 일본어로는 히가시가 대표적이나 다른 발음으론 아즈마로도 사용하는 것이 보편적인데, 이후 아즈마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게된다. 하지만 2008년에 아즈마라는 명칭에 대해 자체적으로 불만과 스트레스가 있어서 이름 변동을 시작, 네이버등 대부분의 온라인에서는 문래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고 있으나 시민국이나 일부 오래된 곳에선 아직도 아즈마라는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2010년 오픈심의 등장으로 Seo 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가 없게되자, 일단 임시적인 형태로 Azuma Hansan으로 등록된 상태이지만, 실질적으론 서한산이라는 세 글자에 큰 의미를 두고 있는 편이다.

역사

다다월즈 이전

네이버에서 한국가상사회라는 가상회사를 운영하는 카페의 매니저였다. 가상회사를 직접 경영해보고 운영하는 것에 대해선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러다가 2007년 5월경에 카페 회원중 한명이던 박정대의 추천으로 다다월즈를 처음접하게된다. 이때 같은 카페에 있던 장 도미니크 시슬리와 같이 접속을 했지만, 처음에 흥미가 없어서 일시적으로 접속을 안했다가 서한산보다 늦게 접속하게 된다. 처음 박정대의 소개로 뉴자유빌에 있었던 화안당역[3]으로, PP16으로 만들어낸 조잡한 건축물이었다. 이후 라핀느 캠벨의 도우미의 도움으로 시민국과 다다월즈 체계에 대해 이해를 하게 된다.

다다월즈

서한산의 다다월즈 활동은 주로 평화마을주연습마을 위주였다. 시민국 국치일시민국월드였던 시절에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기 때문에 학업 매진등으로 컴퓨터 접속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역사들도 평화마을주와 연습마을 위주로 서술되는 편이다.

결혼은 2008년 2월 HARE와 1개월간의 연애 끝에 결혼식을 자유마을 주 쇤부른 궁에서 거행하였다. 신혼 여행은 자유마을주 리가시로 떠났다. 부인 HARE가 시민국 활동이 뜸해지고, 인터넷 상으로 간간히 연락을 하고 지냈으나, 2008년 중반부터는 그 연락마저 완전히 끊긴 상태이다.

정부/정치

전형적인 평화마을 6월세대로써 그거 최초접속한 5월 12일은 평화마을 개주 준비에 한창이었다. 이후 평화마을이 개장되면서 시민국 국회에 첫 선을 보이면서 평화마을의 제 2주택도시엔 상학시 시장으로 선출되었다. 상학시 시장이 시민국 정부에 첫 발을 들인 것이다. 이후 하원의장직, 문화관광부 장관을 맡다가, 2007년 끝에 평화마을 주지사까지 오르게 된다. 하지만 그가 주지사에 있으면서 다양한 각종 병크를 일삼았으며, 결국 그러한 병크는 이후 서한산 주지사 탄핵사건이라는 평화마을 역사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역사로서 탄생하게 된다. 이후 그는 더이상 평화마을과 인연을 둘 수가 없었다. 이후 토트 합스부르크 대통령의 12대 내각에 의해 추대되면서 통계청장, 과학기술부 장관, 대통령궁 대변인등으로 각종 보직에 임명되었으며, 20102년 9월 19일 알브레히트 합스부르크14대 내각에 의해 다시 통계청장 직에 임명되었다.

정치인으로써는 공화당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나, 토트 합스부르크의 꾐에 넘어가 민주당에 가입하기도 했다. 민주당이 사라지면서부터는 사실상 무소속 상태에 가깝다. 2008년에 시민국 월드 시절에는 단군특구 등 다양한 지역에서 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기업/언론인

당시 건축했던 청주공원, 당시 상학시청 옆, 자신의 땅에서 지은 것이다.

시민국에 몇 안되는 기록쟁이로 유명하다. 다다월즈 시절 시민국의 다양한 회사들(PG, EL 그룹, 서화전자, 쥬플)에 근무한 경험이 있다. 방송인으로써는 처음 PGBS에서 기자로 시작, 이후 JBC에 취직하여 기자로써 활동을 하게 된다. 2007년 10월경에 토트 합스부르크의 제안으로 아메스 앤 베리타스의 회장직에도 올라 시티즌 타임즈의 발행을 맡았다. 통계청장을 맡으면서 이와 동시에 신문 제작에도 박차를 가하면서 신문이나 각종 자료에 들어가는데에 스크린샷 촬영은 사실상 필수였는데 이러한 영향으로 기록쟁이라는 별명은 붙여지기 시작되었다. 이후 NT와의 결별로 더아상 활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스크린샷 촬영이나 동영상 제작 등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고, 아메스 앤 베리타스 시절에 촬영했던 사진들은 모두 시민월드연방국 대백과사전에 저작권이 풀린채로 올라가는 경우도 많았다. 또한 일부 자료들의 경우에는 통계청이 소유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러한 자료들은 2012년 현재 통계청 자료관을 통해 충분히 자료를 구할 수가 있도록 해놨다. 한편으로 높마루 포스트에서 근무한 경력도 있다.

이와는 상반되어 다다월즈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언급되고 있는 건축기술에 대해선 크게 발전을 하지못하고 있다. 본인 스스로도 건축에 대해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으며 이러한 영향은 이후 오픈심으로도 이어져 현재도 건축에 대해 상당히 어렵게 보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그래서 부지를 소유하고 있어도 건축을 하지못해 방치된 경우가 상당수이며, 시민국 발전에 건축재능을 기부하지 못한 것에 대해 스스로도 자책을 느끼고 있다. 다다월즈 시절에 본인이 지은 것은 청주공원 과 요코하마 자유시장이 전부이다.

새로 들어오는 새티즌에 대해 교육을 하는 것이 상당히 열정적인 편이었으며 이러한 집착은 상학엔터테인먼트라는 사회 문제까지 불러일으켰다. 신목사립사관학교에서 교수로 활동을 하게 되었지만, 실질적으로 가르친 예는 거의 없다고 보는편이다.

그 외에 은행에도 관심을 가져 엔에프 은행을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다다월즈 당시에는 평화주택금고였다.

오픈심

2010년 이후 오픈심으로 이전을 하면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 이러한 영향은 오늘날에도 이르고 있다.

정부

시민국 내각에서는 통계청장직을 계속 이어서 수행하다가, 18대 내각에 의해 국가기록원장도 겸임을 하고 있다. 또한 외사부의 요원으로써 시민국의 재정을 담당하고 있다. 외사부가 폐지된 이후에도 유에스씨아이에서 행정담당 보직에 있다.

시민국 대통령직을 2016년 5월 27일부터 계속 수행중에 있다. 사실상 시민국이 2017년 이후로는 크게 활동률이 떨어지고 있는데다가 또한 서버비를 벌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며, 2017년 제 9차 정기모임에서부터 언급된 축소지향 정부운용안에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여기에 대부분의 국민들이 동의를 해온데에 있기 때문이다.

기업/언론인

오픈심으로 넘어오면서 높마루은행도 이전을 완료하였으며, 아메스앤베리타스가 사라지면서 사실상 언론쪽에 손을 놓았으나 2011년 3월부로 JBC에 입사, 이후 JBC가 로즈네트워크로 사명을 변경하면서 사실상 아나운서쪽에서 활동을 하였다. 2011년 3월에 시민국 오픈심 최초로 인터넷 라디오 뉴스를 송출하였다. 이와는 별개로 다양한 목적을 가진 회사인 형산전자공업을 세워서 다양한 제품을 개발/생산하는데에 주력을 하고 있다.

같이 보기

개인 연구

사용자:ab2134/연구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위 참조에 들어가면 서한산이 개인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제작된 연습공간으로써, 향후 시민국 대백과사전에 적용될 예정인 것들이다.

주석

  1. 하지만 그에 대한 기록에는 평화마을 주로 기록되어 있다.
  2. 오늘은 한글날, 그리고 유비트 정모가 있는 날이었죠, 서한산, 2011년 10월 9일.
  3. 박정대가 제작, 현재는 사라짐
전 임
아키라 캠벨
제7대 하원의장
2007년 7월 15일 ~ 2007년 12월 8일
후 임
 샤나 디 에스테